83일간 피폭치료 기록 (도카이무라 임계사고) NHK 스페셜 :: 송사마'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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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일간 피폭치료 기록 (도카이무라 임계사고) NHK 스페셜
    카테고리 없음 2009. 2. 10.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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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日間 被爆治療の記録 東海村臨界事故




     

    JCO에서 발생한 이 사건으로 근거리에 있던 작업인 3명중 2명이 사망하고, 임계(임계. 경계(). 특히, 물질이 어떤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화하는 경계.  핵분열 연쇄반응이 지속해서 일어나는 상태를 말한다. 핵분열 반응이 일어나면 대량의 중성자선이 방출된다. 중성자선은 인체안에 있는 나트륨을 나트륨24 라는 방사선 물질로 바꾼다)상태를 수습하기 위해 작업을 한 관계자 7명이 연간 허용선량을 넘어 피폭했지만, 사고 내용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피폭한 작업인을 운반하러 간 구급대원 3명이 2차 피폭을 일으켰다. 게다가 주변 주민에게 중성자선 등의 피폭도 일으켰다. (Wikipedia에서  인용)



    NHK스페셜 2001년 방송


    朽ちていった命―被曝治療83日間の記録 (新潮文庫) (文庫) 

    NHK「東海村臨界事故」取材班 (編集)
    <쓰러져 간 생명 - 피폭치료 83일간의 기록
    NHK <
    東海村 임계사고> 취재판 (편집)>


    내용(「BOOK」데이터베이스 에서)

    1999년 9월에 발생한 이바라키현 도카이무라에서의 임계사건. 핵연료의 가공작업중에 대량의 방사선을 쏘인 환자를 구하기 위한 83일간에 걸친 장렬한 사투가 시작되었다. <생명의 설계도>인 염색체가 부서져 흩어지며, 재생을 멈추자마자 쓰러져간 육체. 전례없는 치료를 이어간 의사 스탭의 고뇌. 인간의 지혜로도 막아낼 수 없는 방사선의 무서움을 새삼 묻게 만드는 혼신의 다큐멘터리.




    저자에 대해
    집필자 岩本裕(Iwamoto Hiroshi)

    NHK보도국 과학 문화부 데스크. 2001년 5월 방송된 NHK스페셜 <피폭치료 83일간의 기록 - 도카이무라 임계사고>는 제56회 문화청 예술제 테레비 부문 우수상과 제42회 몬테카를로 국제 테레비제 뉴스 프로그램 부문&시사 문제 프로그램 골드님프상을 비롯, 일본 국내외 많은 상을 수상했다. 프로그램 취재를 바탕으로 써내려간 이 책은, 제2회 신쵸(新潮) 다큐멘터리 상의 최종 후보작이 되었다. 이외에 <일본 간의료를 묻다>등의 집필작품이 있다.


    발췌

    피폭 1999년 9월 30일


    여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무더운 하루가 될 듯 했다. 
    이바라키현 도카이무라 핵연료 가공시설 <JOC 도카이 사업소>는 도카이무라와 나카마치의 경계인 국도 6호선으로부터 약간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15헥타 남짓의 부지 주변에는 음식점과 민가가 점재해 있다. 이 JOC 도카이 사업소에서 작업자로 근무하는 오우치 히사시(大内久)는 평소와 다름없이 오전 7시에 직장에 출근했다. 오우치는 35세. 아내와 초등학생 3학년의 아들이 있다.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본가 부지에 집을 신축해서 가족 3명이 생활하고 있었다.


    꼼꼼한 성격의 오우치는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6시 40분에 집을 나섰다.
    하루 한갑의 담배를 피웠고, 오후 5시 넘어 귀가한 후, 물로 희석한 소주 2잔 정도를 마시고, 9시에는 잠자리에 들었다. 이것이 오우치의 일상이었다.
    1999년 9월 30일. 이 날도, 이러한 여느때와 다름없는 하루가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 날, 오우치는 오전 10시에 사무소내의 전환시험동(棟)이라는 건물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핵연료 사이클 개발기구인 고속실험 가마 <常陽>에서 사용하는 우라늄 연료의 가공작업이었다.

    오우치에게 전환시험동에서의 작업은 처음이었다. 상사와 동료 3명이 9월 10일부터 작업에 배치되어, 드디어 완성 단계에 이른 것이었다.
     
     
    오우치는 맨 먼저 상사의 지시에 따라 스테인레스제 양동이 안에 우라늄 용액을 눗체(ヌッチェ)라 불리는 여과기에 여과시키고 있었다. 상사와 부하는 여과시킨 용액을 침전(수)조(沈殿槽)라는 대형 용기에 옮겨 담았다. 상사는 핸드 홀 이라 불리는 감시창문처럼 되어 있는 구멍에 로트를 찔러넣어 지탱을 하고, 동료가 스테인레스제 비커로 우라늄 용액을 흘려 넣었다. 여과 작업을 끝낸 오우치와 상사와 교대로, 로트를 지탱하는 작업을 담당했다.
    양동이로 7개째. 마지막 우라늄 용액을 동료가 흘려보내기 시작한 순간, 오우치는 "파싯" 하는 소리와 함께 파란 빛을 보게된다. 임계에 도달했을 때 방출되는 <체렌코프의 빛>이었다. 그 순간, 방사선 중에서도 가장 에너지가 강한 중성자선이 오우치의 몸을 통과했다. 피폭한 것이었다.

    오전 10시 35분, 방사선이 나온 것을 알리는 Area 모니터의 사이렌이 사업소내에 울려퍼졌다.
    <도망쳐!>
    별실(別室)로 옮겨 있던 상사가 절규했다. 오우치는 서둘러 그 장소를 벗어나, 방사선 관리구역 밖에 있는 한 탈의실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그리고, 그 직후, 갑자기 구토를 하고 의식을 잃었다.......


    그 무렵, 도쿄대학 의학부 교수인  마에카와 가즈히코는 도쿄역으로 향하는 열차안이었다.
    마에카와는 전날, 니이가타현(新潟県) 가시와자키시(柏崎市)에서 열린 <긴급 피폭의료에 관한 정보교환회>에 참석했었다. 도쿄전력 가시와자키 가리와(刈羽) 원자력발전소의 관계자와 지역의료 관계자, 그리고 소방본부가, 방사선 사고로 피폭한 환자가 발생한 경우의 대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었다.

    마에카와의 전공은 구급의료였다. 구급의료는 의사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야쿠자스러운 현장> 취급을 받는다. 심장병, 뇌졸중, 부상. 수많은 증상으로 갑자기 실려오는 환자들. 심장이 멈춘 상태로 실려오는 환자도 매우 많다. 그 현장에서 30년 이상에 걸쳐 치료를 담당해 왔다. 교수가 된 지금도 야윈몸에 흰 가운을 걸친채 매일 병동 회진을 거르지 않는다. 안경 너머의 날카로운 눈매가 환자를 대할 때에는 부드러운 빛으로 충만해진다. 의식이 없는 환자일지라도 변함이 없다.
    현장 제1주의의 의사로 생활해 온 마에카와에게 최근까지 원자력과의 접점은 없었다. 그러한 마에카와가 가시와자키에서의 회의에 참석한 것은 원자력 안전연구협회 피폭의료대책 전문위원회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에카와에게 있어 전혀 생소한 일이었지만, 원자력 안전위원으로 도쿄대학 의학부 방사선 건강관리학 강좌 교수였던 아오키(青木芳朗)로부터의 의뢰를 거절하지 못해, 2년전 원자력 관련된 다양한 직책을 이어왔던 것이다. 아오키는 <방사선 피폭환자가 최초로 실려오는 곳은 구급의료기관이니문에, 당신도 피폭 의료에 관계된거 아닌가>라며 마에카와를 설득했다.  하지만 마에카와가 기대했던 것은, 사실은 마에카와의 실행력이었는지도 모른다. 눈앞에 다가온 난제에도 초조해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맞서는 마에카와의 개성이, 당시에 정비되지 않았던 피폭의료체제의 기초쌓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피폭의료 전문가로서의 첫 발을 내디딘 마에카와는, 마에카와의 정보교환회에서 원자력 관련 시설 주변의 병원의사와 의료 스태프에게 피폭의료 지식이 철처하게 교육되어 있지 않음을 다시한번 절감하고, 깜짝 놀랐다. 
    <만약 지금 진짜로 피폭 사고가 일어난다면....>
    돌아가는 열차에서, 마에카와는 피폭의료의 체제를 갖추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을 통감하고는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오후 1시 28분.  마에카와를 태운 급속 열차 <아사히 314호>는 도쿄역에 도착했다.
    이제부터, 다시 본업인 구급의로 돌아가야만 한다. 플랫폼에 발을 내디딘 순간, 갑자기 전화 벨이 울린다.  병원 의료국을 출입하는 의약회사의 영업담당자로부터의 전화였다.  
     <도카이무라의 원자력 관련시설에서 뭔가 방사선 사고가 있었던 듯 합니다>
    국내의 원자력 관련 시설에서 중대한 피폭사고가 일어난 일은 전례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사고일까?>
    마에카와는 어쨌든 우선 병원으로 돌아가려고 택시에 올라탔다.


    병원의 의료국에 도착하자 마자 테레비 전원을 켰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이제껏 본 적이 없는 영상이었다. 활성탄이 들어간 휠터가 붙은 가스마스크와 같은 방호마스크로 얼굴을 덮어쓰고 흰 방사선 방호복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몸을 감싼 몇 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환자를 태운 들것을 운반하고 있었다.   환자는 몸 전체를 투명한 비닐로 감싸고 있었다.
    환자가 옮겨진 건물이, 몇 번이나 방문한 적 있는 치바현의 방사선 의학 종합연구소의 입구임을 인식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뉴스는 이바라키현 도카이무라의 핵연료 가공시설에서 사고가 발생했고, 작업자 3명이 쓰러졌다고 전하고 있었다.
     
    3명은 사고가 발생한 시설에서 가까운 국립수도병원에 일단 옮겨진 후, 헬리콥터로 치바현의 방사선 의학 종합연구소에 수용되었다고 한다. 방사선 사고로 환자가 옮겨질 때 방호마스크를 쓰는 일은 좀처럼 없다. 그런데도 방사선 피폭치료의 전문가가 구비되어 있는 방사선 의학 종합연구소에서, 스태프가 지금 방호마스크를 쓰고 방사선 방호복을 입고 있다.  

    <지나칠 정도로 심하게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군>
    마에카와는 이렇게 생각하며 무언가 중대한 일이 일어난 것이 틀림없음을 확신했다. 마에카와는 교수실로 돌아와, 방사선 의학 종합연구소의 방사선 장해 의료부 임상면역실장인 스즈키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스즈키는 도쿄대학의학부를 거쳐 1985년 방사선 의학 종합연구소로 옮겼다. 1954년에 미국이 태평양의 비키니 환초(環礁)에서 행한 수소폭탄실험 당시, 근처를 항해하고 있다 피폭한 일본인 어민의 건강진단을 매일 실시하는 등 피폭치료의 전문의로 활약하고 있다. 큰 체구에 온후한 스즈키는 언제나 침착한 듯 보였다. 하지만 이 스즈키가 수화기의 맞은편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것이 손에 잡히듯 전해져 왔다.


    스즈키는 오후 5시 30분경 부터 열리고 있던 방사선 의학 종합연구소에서의 최초의 전체회의 중에 마에카와의 전화를 받았다. 스즈키는 마에카와에게 증상과 긴급 혈액검사 결과 등으로 봐서, 옮겨진 3명 가운데 오우치와 동료 2명이 매우 높은 선량(線量)의 피폭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이야기했다. 또 3명이 방사선 물질에 쏘이지 않은 것과 오우치의 구토물을 분석한 결과 나트륨24가 검출된 것으로 보아, 중선자선에 의한 피폭, 즉 <임계사고>라 확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임계>라는 것은, 핵분열 연쇄반응이 지속해서 일어나는 상태를 말한다. 핵분열 반응이 일어나면 대량의 중성자선이 방출된다. 중성자선은 인체안에 있는 나트륨을 나트륨24라는 방사선 물질로 바꾼다. 


    스즈키가 말하는 것처럼 진짜 임계사고라고 한다면, 국내에서의 첫번째 케이스다. 게다가 심각한 정도의 피폭환자가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마에카와는 뭐라도 돕고싶다고 스즈키에게 전한다. 마에카와는 스즈키와의 전화를 끊은 후, 현장이 분주할 것이라 생각하고, 방사선 의학 종합연구소장인 스즈키 야스히토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을 한동안 망설였다. 마침내 마음을 가다듬고 수화기를 손에 쥔 것은 오후 여섯시 반. 마에카와는 전화를 받은 스즈키에게 자신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긴급 피폭의료 네크워크 회의>의 개최를 제안한다. 네트워크 회의는 국가의 방재기본 계획에 근거해 설치된 조직이다. 피폭의료의 전문가들의 정보교환과 연구  협력 등을 목적으로 1년 전인 1998년 7월 발족했다.


     스즈키는 네트워크 회의의 개최를 승낙하고, 회합은 다음날 아침부터 열리게 되었다.


    이 때 마에카와는, 자기자신이 피폭치료의 중심을 짊어지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었다.


    출처 : http://www.amazon.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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